Page 119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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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연기관의 전개」상 2절)
[p.137-11] 어찌하여 무명에 빠진 범부
‘본능本能’과 ‘실각實覺’
는 세계의 진상을 이해할 수 없는가. 언제까
지나 ‘자연적 입장’에 빠진 채로 만족하며, 무지의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없
는 것인가. 돌변하여 이 질문은 예리하다. 우이 견해의 사각을 찌르고 있다.
여기에서 감히 사적인 견해를 덧붙이면, 붓다가 도달한 ‘법의 진상’을
알지 못하게 하고 거기에서 범부를 멀리하는 ‘근본동력’은, 인간의 생물
로서의 본능인 것이다. 덧붙여서 본능이라는 용어는 너무 개략적으로 설
득력이 약한 용어로서, 현재 생물학과 심리학, 인지과학 등의 전문분야
에서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자연과학 용어의 엄밀성에 배
려할 필요가 없어진 지금이야말로 무명의 이해를 돕는 개념으로서 불교
에 이 말을 도입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전적으로 이어받은 행동
의 양식과 능력 정도의 의미이다. 이 생물적인 본능과, 성장의 과정에서
획득한 문화적, 사회적인 유사본능으로서의 언어. 이 두 가지가 우리들
에게 자기와 세계에 대한 원초적인 인지를 형성하고, 우리들의 직각(直覺,
intuition)과 실감實感을 통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직각과 실감. 이 두 가지 말의 의미를 하나의 용어로 나타내기 위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실각’이라는 옛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다. 여기에
서 말하는 실각이란, 예를 들면 어떤 사물을 기분 좋게 느끼는 심신의 움
직임을 말한다. 그것을 좋아한다거나 아까와 한다. 한편으로 어떤 사물은
기분 나쁘게 느낀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싫어하고, 미워하며, 배
척하고자 한다. 이것이 실각이다.
또 기분 좋은 것, 유쾌한 것, 사랑스런 것을 좋아하고 그것들에 집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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