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19년 8월호 Vol. 76
P. 97

하서의 도랑은 『열반경』의 서문을 지었고, 현존하지 않지만 『열반경의

            소涅槃經義疏』와 『법화경의소法華經義疏』를 저술하였다고 한다. 그 학설이
            구마라집 문하와 근사한 데가 있고, 실제 교섭이 있었는지도 알려지지 않

            았다. 이렇게 『열반경』과 『법화경』의 권위자인 하서도랑의 설이 관중 일파
            의 설과 일치한다고 강남 불교계에 선전한 곳에 관하구설을 강조한 길장

            의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5)



              4) 관하關河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관내關內와 관중關中은 구마라집과 직계 제자들이 활약한 옛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을 의미한다. 관하關河는 관중과 하서(黃河의 서쪽 지역)를 겸하
            여 말하는 경우도 몇 가지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관하는 곧 관중이라고

            단언한 탕융통 교수의 지적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길장이 다른 주석
            서에서 관하가 관중과 하서를 겸하여 말하는 경우를 조사하지 못했다 해

            도, 다만 관중으로 규정한 것은 성급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탕 교
            수의 그러한 지적은 그 이전에 이미 길장이 말한 낭공朗公을 안징이 도랑

            道朗이라 간주하고, 관하를 관중과 하서로 구분하여, 하서의 도랑을 삼론
            학파 조사로 오인하게 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카이노 고요境野黃洋 박

            사의 저술을 참고하고 말한 것이다. 거기에 지정학적 용어로 중국의 사서
            史書와 사전辭典에도 관하라는 지명地名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설

            명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와 별도로 내용적으로 좁은 의미에서 관하가 관중을 의미하는 경






            5) 平井俊榮, 『中國般若思想史硏究』, 1976, pp.65~72. 趣意 요약.



                                                                        95
   92   93   94   95   96   97   98   99   100   101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