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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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뢰야식은 원인과 결과가 다른 마음[이숙식]이다


             아뢰야식의 또 다른 명칭으로 이숙식이 있습니다. 이숙이란 범어 ‘비파

           카vipāka’의 한역으로, ‘이전의 원인과 나중의 결과가 다르게 익는다[성숙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의 원인이란 과거의 행위이고, 성숙한 결과는

           아뢰야식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행위는 선이나 악이지만, 결과로
           생긴 아뢰야식은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인시선악因是善惡 과시무기果是無記’라고 합니다. 즉 선악
           에 대한 인간의 행위가 원인이 되어 사람의 인격은 형성되지만, 그 결과

           로 결실한 자기, 즉 현재의 자기는 무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기’라는 것은 선인지 악인지 나타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비선비악

           非善非惡이기 때문에 현재의 자기는 선악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마음이 선하다고만 한다면, 선한 마음에서 어떻게 악이 나

           오는가? 반대로 인간이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한다면, 선한 행위의 근거
           는 어디에서 구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

           로 나쁜 인간이 갑자기 선한 사람으로 변하거나 또는 착한 사람이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변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인간의 이해에 대한 논리적인 정

           합성을 가진 무기가 답변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무기이기 때문
           에 어느 쪽으로도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만약 인간이 본래적으로 선

           악의 성질을 가졌다고 한다면, 선악 또는 회심·타락 등의 서로 모순되는
           행위에 대한 근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과거와의 관계 속에서 아뢰야식을 파악할 때, 이것을 ‘이숙
           식’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과거를 끊어버리고 살아갈 수 없으

           며, 어떤 의미로든 과거를 짊어지고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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