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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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모두에 일인日人 사카이노의 소견이 있으나, 그 추론推論이 완전히 정
밀하지 못하다고 평하면서, 사항별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첫째로 주옹이 승랑僧朗에게 수학하여 『삼종론』을 지었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고 하였다.
둘째로 양무제가 승랑의 의義를 얻어 소疏를 지었다고 하였는데,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과장을 면할 수 없고, 개선開善이 승랑의 강의를 들었다
는 것도 역시 과장이라고 보았다. 다만 양무제가 『열반경』을 중시하고,
『성실론』에 대한 연구는 듣지 못하였으며, 사카이노境野는 『속고승전』의
「법태전法泰傳」에 의하여 양무제가 『대지도론』과 『성실론』을 좋아했다고
해석하였는데, 이 부분은 신뢰할 수 없다고 하였다.
셋째로 승랑이 삼론학을 관중關中에서 습득하였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고 보았다. ‘관하구설關河舊說’은 곧 구마라집과 그 제자인 조영肇影 등 제
공諸公의 학설을 의미하는데, 승랑이 제양齊梁 때에 삼론을 부흥시킨 일의
근원을 멀리 고설古說에 빙자한 것은 이치가 없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길장이 누차 주장하는 것들, 승랑이 삼론학을 관중에서 얻었다는 것과
아울러 양무제가 『성실론』을 버리고 개선도 이 의義를 들었다는 것은, 다
른 뜻이 있다고 의심되는 바, 그것은 불가불 섭산 삼론의 발달과 성실학
13)
자成實學者와의 쟁집爭執을 해명하기 위함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의문이 제기되고 나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반박한 전 동국대 김
잉석金芿石교수의 반론은 다음에 상설하겠다.
13) 湯用彤, 『漢魏兩晋南北朝佛敎史』 臺北 漢聲出版社, 1938, pp.739-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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