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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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승랑이 남토에 온 시기를 확실히 알 수 없는데, 이 문제는 승랑과

            주옹의 사제 관계와 맞물려 있어 수용하기에 의문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승랑의 남도南渡 시기에 대하여 길장의 저서에는 명확한 기록이 없고,

            다른 저술에는  ‘송말제시宋末齊始’ ‘제말양시齊末梁始’, 형계荊溪의 『법화현
            의석첨法華玄義釋籤』에는 ‘제건무齊建武’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어떤 시

            기에도, 심지어 서로 뜻이 부합하여 주옹에게 『삼종론』의 공간을 제안한
            지림智琳의 서간 내용중 ‘묘음중절妙音中絶(라집 문하 삼론학의 교의가 이후 단절

            된 것을 의미함) 67재載’를 길장이 ‘묘음중절 40여재餘載’로 개작하여 승랑의
            남도시기를 송말宋末로 하여도, 승랑이 주옹을 가르친 것은 여전히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학계의 노숙老宿인 지림智琳이 추중推重한 주옹은 당시 이미 상당한

            연배年配였으리라 생각되며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냈는데, 승랑보다 아득
            한 선배로서 10년이나 20년의 연령차가 있었을 것이다. 주옹의 위치로

            보아도, 스승인 법도法度에 의하지 않고 연소年少의 승랑에게 가르침을 받
            았다고 말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몇 차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도출해낸 결론은, 승랑과 주옹의 사제설師弟說은 섭령상승攝嶺相承이
            관내關內 정통 전승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길장이 구사한 가공架空의 담談

                                                       12)
            이라는 것은,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3) 사카이노의 주장을 읽고 이에 동조한 탕용통湯用彤(1893-1964)교수
            는, 승랑에 관하여 길장이 전하는 내용은 세 가지 요점이 있고, 그 세 가







            12)  境野黃洋, 『支那佛敎史講話』 下卷, 東京 共立社, 1929, .pp.1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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