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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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툴툴대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은 아주 드물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

            금도, 형제자매들 사이가 다 좋고 특히 친구의 시집식구들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좋아 보인다. 자주 만나고 아들 둘이 돌아가면서 집안 제사를 지

            내자고 제안한 것도 친구다. 어쨌든 그녀를 보면서 사람은 저 정도 마음
            그릇은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음을 곱게 쓰니 자식들도 머리가 뛰어나고 인성도 좋다. 결혼하고
            남편이 하와이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바람에 애들 둘을 6년 동안 그곳에

            서 키웠다. 초등학생이던 큰딸은 머리가 명석해서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
            타냈고 중고등학교를 여기서 마친 다음 다시 미국으로 가 대학을 마쳤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학에서 예술과 과학을 접목한 학문을 공부했다. 아들
            도 물론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지금은

            유수의 회사에 다니고 있다.



              마음 넓은 친구의 고민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나와 직장에 다니던 딸이 같
            은 직장에서 만난 프랑스 남자와 교제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매사 긍

            정적이고 포용력이 넓던 친구는 펄쩍 뛰며 반대했다. 딸이 자기애가 강한
            애라서 문화가 다른 외국인과 잘 살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익숙한 미국인

            도 아니고 유럽 남자라서 안 되고 등등 반대하는 이유가 많았다. 그러나
            젊은 자식들의 사랑 앞에 부모의 반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친구의

            딸은 3년 넘게 지속해온 사랑으로 증명했다. 워낙 개성 있고 똑똑한 딸이
            라는 걸 아니까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프랑스에서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와서 만나봤는데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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