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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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714) 스님과 지주(智周, 668-723) 스님 순으로 전승되었다. 그러나 법

           상교학 자체의 한계와 화엄종의 원융무애한 사상이 등장하면서 지주 스
           님 사후에 교세가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신라 출신의 학승 원측 스님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장 스님의 3천문도 중에는 4명의 상족이 있고, 그

           중에 한 명이 신라 출신의 신방이다. 이는 신라 출신의 학승이 법상종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국 유식학에는 또 한 명의

           신라출신 천재가 있었으니 바로 원측(圓測, 613-696) 스님이다. 원측 스님
           은 법상종의 정통 계보에는 속하지 않지만 현장 문하의 뛰어난 유식학승

           으로 손꼽히는 학승이다. 신방 스님이 법상종 중심에서 활동했다면 원측
           스님은 비주류의 핵심으로 활동한 것이므로 법상종의 내부와 외부에 신

           라 출신의 학승들이 활동한 셈이다.
             원측 스님은 신라의 왕족 출신으로 불과 3세의 어린 나이에 출가하고,

           15세의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섭론종攝論宗 계파인
           법상法常과 승변僧辨으로부터 유식학을 배우면서 유식과 인연을 맺는다.

           원측 스님은 언어에 대한 재능이 탁월해 중국어는 물론 범어까지도 능통
           하게 구사했다. 이에 당 태종은 친히 도첩度牒을 내리고 원법사元法寺에

           머물며 연구하게 했다.
             이후 원측 스님은 탁월한 어학능력과 불교에 대한 해박한 학식을 바탕

           으로 다양한 역경사업에 참여했다. 『대승밀엄경』 등의 번역에 참여하였
           고, 측천무후의 후원을 받아 『대승현식경』을 번역할 때는 고증을 맡아 번

           역을 주도했다. 나아가 보리유지 삼장이 가져온 『보우경』을 번역하고,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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