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고경 - 2019년 9월호 Vol.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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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북지에서 삼론을 배우고 이어 강남으로 가서 종산 초당사에 머
물면서 은사 주옹에게 사사하였다. 양무제는 승랑의 법을 듣고 승정僧正
지적智寂 등 10인으로 하여금 삼론을 배우게 했다. 승랑은 ‘섭산고려낭대
3)
사攝山高麗朗大師’로 호칭했다.”
4)
나중에 출판된 한국어 번역본 에도 이 부분이 틀리지 않고, ‘승랑은
……은사 주옹에게 사사하였다(僧朗は……隱士周顒に師事した)’라고 되어
있다.
③ 십수년 지나 1999년에 출판된 전집의 『중국불교사』 제6권에는 또
다르게 설명되어 있다. “승랑이 북토北土에서 남토南土로 들어와 종산 초
당사에 머물렀는데, 은사 주옹은 승랑에게 삼론을 수학受學하였다는 길장
의 저술 『대승현론大乘玄論』(T45, 19b)의 기록을 인용한 이후, 주옹이 과연
승랑에게 사사師事했는가 아닌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주옹과 승랑 간에
5)
교류가 있었던 것은 확실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동일한 저자가 세 저서에서 모두 다르게 설명한 것이다. 20여 년의 시
차를 두고 출판된 세 저서에서, 먼저 단행본 『중국불교사』에는 승랑과 주
옹의 사제관계를 ‘승랑→주옹’, 중간의 『조선불교사』에는 반대로 ‘주옹→
승랑’으로 바꾸어 말한 뒤, 나중 전집의 『중국불교사』에는 승랑과 주옹의
수학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고 하였다. 저명한 불교학자가 고의로 그렇게
설명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설명하게 만든 요인들이 그 배후에 이미
3) 鎌田茂雄, 『朝鮮佛敎史』, 東京大學出版會, 1987, p.26.
4) 鎌田茂雄, 『韓國佛敎史』, 申賢淑譯, 民族社, 1988, p.37.
5) 鍾田茂雄, 『中國佛敎史』 제6권, 『隋唐の佛敎』 (下), 東京大學出版會,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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