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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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고익진高翊晋 교수가 거론한 사항들은, 대부분 이전 김잉석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는 추세였다. 승랑의 사제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서술하였
다. “승랑과 주옹의 만남은 역사적인 사실이었다고 생각된다 … 주옹의
삼종론 저술이 승랑의 교시敎示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확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두 사람의 만남만은 길장 저작의 수처隋處에 서술되어 있는 바
와 같이 진실에 가까웠던 것으로 볼 수가 있다.” 8)
② 가마다 시게오 교수의 승랑 수학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설명
전편(『고경』 제77호)에서 거론한 가마다 시게오 교수의 세 가지 서술 중
두 번째와 세 번째 서술의 근거를 모색해 본다. 1987년에 간행된 『조선불
교사』에서 서술한 “승랑은 요동 사람으로 북지에서 삼론을 배우고 이어
강남으로 가서 종산 초당사에 머물면서 은사 주옹에게 사사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라이 교수의 역설적 가설을 수용하여 단언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1999년에 출판된 『중국불교사』 제6권에서는 “승랑이 북
토에서 남토로 들어와 종산 초당사에 머물렀는데…주옹이 과연 승랑에
게 사사師事했는가 아닌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주옹과 승랑 간에 교류가
9)
있었던 것은 확실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익진 교수의 설명을
참조한 때문인지, 그 설명이 내용적으로 유사하다.
6. 승랑에 대한 『사론현의』의 증언
8) 高翊晋, 『韓國古代佛敎思想史』,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pp.95-97.
9) 鍾田茂雄, 『中國佛敎史』 제6권, 『隋唐の佛敎』(下), 東京大學出版會,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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