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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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다.  1)

             ② 경야씨境野氏는 승랑의 남래南來를 제말양시齊末梁始로 하고 주옹이
           수학한 것을 부인否認하고 있다. 그러나 경야씨는 주옹의 수학을 섭산지

           사攝山之事로 오인誤認하고 부인하는 것이나, 주옹의 수학은 섭산이 아니
           라 분명히 종산鍾山 초당사草堂寺이니 문제될 것이 없고, 섭령입산攝嶺入山

           을 제말양시齊末梁始로 하면 문제는 다 해결되는 것이다.                  2)
             ③ 승랑은 남방에 가기전 북토에서 이미 삼론三論에 난숙爛熟하였고 그

           후 송말宋末에 남방에 갔으며, 제말양시齊末梁始에 섭산에 들어 법도法度의
           뒤를 이은 것이다. 승랑과 동시대인 혜교慧皎의 『고승전高僧傳』을 신용하

           여 승랑이 법도의 제자弟子임은 인정하나, 그러나 계산繼山의 제자요 사법
           嗣法의 제자 아님도 부언해 둔다.

             ④ 또 경야씨는 승랑 남래를 송말宋末로 하면, 주옹은 국자박사國子博士
           를 지낸 학자요, 연장자年長者인데, 법도法度에게 수학하지 않고 연소자인

           승랑에게 수학할 수가 있느냐 하여, 주옹수학周顒受學을 부인하고 길장구
           설吉藏構說로 돌리나,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길장을 모독冒瀆한 망

           설妄舌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 김잉석 교수의 반론이, 도대체 사카이노 박사가 제기한 의심
           사항들을 어느 정도 해명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그 뒤를 이어 계속 의심

           한 이들의 견해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쳤던 것일까? 그 반론 이후 히라이







           1) 金芿石, 「高句麗 僧朗의 三論學」, 『白性郁頌壽 佛敎學論文集』, 동국대학교, 1959, p.65.
           2) ②는 앞의 논문, pp.49-50. 다음의 ③은 앞의 논문, p.51. ④는 앞의 논문,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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