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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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 결코 있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또 하나는, 나이 많고 학식 높은 주옹이 연하의 승랑에게 수학한 점에
           대한 것이다. 김잉석 교수가 반론한 ④사항의 내용에 대하여, 히라이 교

           수는 “주옹은 제영명齊永明 7년 … 『약성실론略成實論』을 편찬할 때 칙명에
           의하여 그 서문序文을 썼다. 따라서 이미 일방一方의 대가大家인 주옹이 승

           랑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부정설否定說
           의 유력한 근거이다 … 법도法度를 제외하고 연소年少의 승랑에게 가르침

           을 청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境野가) 말한 것도 경솔한 생각이다 … 승랑
           이 약년若年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주옹과의 교류를 부정하는 이유가 된다

                             4)
           고 생각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 두 사항은 내용적으로 일치하거나 연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

           다. 두 사항의 유사함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김잉석의 영향 때문인
           지, 나중에 논의한 히라이 교수의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두 견해

           가 먼저 김잉석 교수에게서 파생한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다른 사항을 하나 더 지적해 둔다. 히라이 교수는 승랑과 주옹의 사

           제설은, 섭령상승攝嶺相承이 관내關內 구의구종旧義旧宗의 정통소전正統所
           傳이라는 소이所以를 훤전喧傳하려고 한 길장의 허구라고 단정한 사카이

           노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이 하쿠주宇井伯壽 박사
                                          5)
           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제시된 해당 저서를 필자가
           찾아 보았더니, “가상대사嘉祥大師는, 대랑법사大朗法師가 관내에서 이 뜻





           3) 平井俊榮, 『中國般若思想史硏究』, 東京:春秋社, 1976, pp.256-257.
           4) 앞의 책, pp.259-260.
           5) 앞의 책, pp.255-256의 註(11)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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