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고경 - 2019년 10월호 Vol.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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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에이平井俊榮 교수와 한국어韓國語 자료를 많이 섭렵한 가마다 시게오鍾
田茂雄 교수의 저서들이 출간되었지만, 거기에 사카이노의 주장을 반박한
김잉석에 대한 논평은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5. 승랑의 수학과 업적을 의심한 후기의 학자들
1) 히라이 슌에이 교수의 의심과 가설
앞에서 소개한 사카이노境野 박사의 부정적 견해에 공명하여, 한층
더 자세히 부연한 이는 히라이平井俊榮 교수다. 1976년에 발행한 자신의
저서에서 사카이노 박사의 주장을 수용하여 비판하면서 논의하다가,
마침내 길장이 전하는 말에도 반하는 역설적逆說的인 주장을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논의 도중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으니, 김잉석의 반론과
흡사한 내용이 두 가지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는 승랑의 남래하여 입산入山한 시기에 대한 견해이다. 김잉석
교수가 ②사항에서 “경야씨境野氏는 주옹의 수학을 섭산지사攝山之事로 오
인하고 부인하였으나 주옹의 수학은 섭산攝山이 아니라 종산鍾山 초당사
라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였다. 히라이교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선
인(先人, 境野黃洋를 말함)이 무시한 점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길장은 승랑
이 직접 섭산에 왔다고 말하지 않고, 최초로 남지에 와서 종산 초당사에
머물렀다고 말한 점이다…승랑이 남유南遊하여 수년 후에 초당사에 입산
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종산에서 주옹과 해후하였다고 말한 역사적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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