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19년 12월호 Vol.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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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abhadra. 359-429)는 그 문하의 냉대를 받아 혜관 등과 함께 남방으로

           가, 혜엄 등과 함께 60권 『화엄경』을 역출하였다. 그 학습 내력이 분명하지
           않지만, 승랑의 『화엄경』 이해는 당시 독보적이었다고 한다.

             승전의 학풍은 설법을 너무 많이 하지 않고, 내면적인 수행에 힘을 쏟
           은 경향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 승전이 법랑에게 수업할 무렵의 교시에

           도 나타나 있다. “현묘한 취지가 드러나는 것은 오직 중관中觀에 있으니,
           마음으로 도리를 해석하여 계합하지 못하면, 어떻게 이 청정한 언어에 계

           합하겠는가. 그리하여 행적을 그윽한 수림에 두어 선미禪味를 상득相得한
               4)
           다.”  승전은 섭산에 거주하며 좌선삼매 갈은 것을 수행한 것이다.


           4. 승전의 문하와 4대 제자

             양무제의 조칙으로 섭산에 파견되어 승랑으로부터 학업을 성취한 이
           후, 승전의 명성이 멀리 퍼져 수학하러 온 학도들이 오백 명에 이르렀다.

           학계에서는 대개 삼론학이 학파 종파다운 교세를 갖춘 것은 바로 이 승전
           시대부터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명성을 듣고 사방에서 삼론을 유학遊學하러 온 학사學士들이 소
           털[우모牛毛]처럼 많았어도, 학업을 성취한 이는 매우 적었다고 한다. 삼론

           의 학업이 용이하지 않았지만, 이를 성취한 이들은 당대에 뛰어난 지도자
           로서, 다른 학파 종파의 선구자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다.

             수 백명에 이르는 승전의 문도 중에 학업을 성취하여 가장 뛰어난 네
           명을 당시에 ‘전공사우詮公四友’라 칭하였다. 그 네 명은 곧 법랑法朗·혜






           4) 道宣, 『續高僧傳』 제7권 「釋法朗」(T50, p.47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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