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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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배우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근대’ 이전에 이 땅에 불교학

            이 없었다고 얘기를 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불학’은 있었다는 사실을 놓
            쳐서는 아니될 것이다. 왜냐하면 학문이라는 객관성과 보편성을 지닌 과

            학적 사유의 틀이 이 땅에 없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종교로서
            의 불교를 ‘반反과학’이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서구학자들과 ‘과학’의 독

            선으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격의불교 - 주체적 학문 방법              이러한 불교와 불학은 중국의 전한시

            대 말엽과 후한시대를 지나 남북조 시대에 북쪽과 남쪽의 육로와 해로를

            거쳐 중국과 한국에 전해졌다. 당시 고대에는 고구려와 백제, 가야와 신
            라에 전래되고 수용되어 공인되고 유통되었다. 중국에 전래된 ‘불경 한

            역’의 과정에서 이뤄진 ‘격의’格義와 종파 형성의 과정에서 수립된 ‘교판’敎
            判은 불교 연구의 주요 방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격의’는 인도 서역 문명

            의 외적 사태를 중국 동아시아 문명의 내적 주체로 해석해낸 것이었다.
            이것은 불경 한역의 ‘연구 방법’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격의는 본

            의기로 진입하기 위한 과도기의 불교 이해이지만 전통학의 계승 아래에
            서 수입학의 과정을 거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주체적 학문 방법

            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불교의 주요 개념인 ‘공’空을 ‘무’無로, ‘열반’涅槃을 무위無爲로,

            ‘진여’眞如를 ‘본무’本無 등으로 옮겼다. 비실체성을 상징하는 ‘공’을 존재론
            적인 부재를 의미하는 ‘무’로 옮긴 것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또 일체의

            번뇌를 끊은 상태를 가리키는 ‘열반’을 아무런 인위와 작위가 없는 상태인
            ‘무위’로 옮긴 것도 온전한 것이 아니었다. 나아가 우리의 개념적 분별의

            개입이 이뤄지기 전의 ‘진여’를 본래부터 없는 것을 의미하는 ‘본무’로 옮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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