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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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의 주체적 학문 방법으로서 활용해야만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말로

            철학하기’와 ‘우리말로 불학하기’가 가능할 것이다.


            교상판석 - 능동적 학문 방법              교상판석敎相判釋 즉 교판敎判은 붓다

            의 입멸 이후 인도에서 약 일천여 년에 걸쳐 중국에 전해져 한역된 수많

            은 불전들을 학문적으로 분석하고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낸
            불교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교판은 불설의 핵심을 알기 위해

            불전에 대한 시간五時적·방법化儀적·내용化法적 검토 위에서 이루어진
            경전해석학이자 학문방법론이었다.

              붓다가 설한 많은 경전들이 중국에 이르러 번역이 되자 불학자들은 어
            느 것이 ‘최고最高의 불설’이자 ‘최후最後의 불설’인지를 따지게 되었다. 그

            리하여 붓다의 교설이 설해진 시기와 내용과 방법을 묻기 시작했다. 본
            디 교판은 수당 이전 시대까지는 한역불전에 대한 공정한 이해를 도모하

            려는 경전해석학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수당 이후 시대에 교판
            은 자종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즉 각 종파들은

            자신들이 의지하는 소의경론을 ‘최고의 가르침’ 혹은 ‘최후의 가르침’으로
            설정하였다. 이들은 자종自宗의 소의경론所依經論을 높이고 타종他宗의 소

            의경론을 평가절하 하였다. 이에 천태지의(538-597)는 양자강 남쪽에 전
            래된 교상敎相을 분류하고 해석하여 ‘남삼북칠’南三北七의 교판으로 정리해

            냈다. 그 결과 이들 교판에 의거하여 종파가 형성되었다.
              지의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 『화엄경』을 설했다고 보았다. 그는

            붓다가 초7일은 선정에 들었다가 2 7일에 『화엄경』을 설하여 3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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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했다고 하였다. 하지만 오백 명의 비구들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가
            르침이라 자리를 떠나 다시 12년 동안 녹야원에서 『아함경』을 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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