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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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2호 | 일본 근대의 출발로서 메이지유
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 일본 2
신은 이전 에도막부江戶幕府의 근세
를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국가건설
을 목표로 하는 혁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에도막부의 쇼군將軍 중
불교 회생의 길 심의 정치체제를 천황 중심의 체제
로 돌리고, 종교적으로는 불교가 중
심이 되었던 사회체제를 신도중심의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과 교수
체제로 바꾸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
히 종교형태상 오랜 기간 전통으로
간주된 신불습합神佛習合의 문화를
부정하여 신불분리에 의한 신도 우
위를 강제하고자 한 것이 근대초기
의 종교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불분리령神佛分離令에 의
한 정치적, 종교적 강제가 시행됨에
따라 생겨난 불교에 대한 억압이 소
위 폐불훼석廢佛毁釋으로, 이 폐불훼
석의 풍조는 일본 전역을 강타해 불
교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타격을
이태승 일본 고마자와대학 박사, 전前 한
국불교연구원 원장, 일본 인도학불교학 받게 되었다. 천황을 정치적 정점에
회 이사, 인도철학회 편집이사. 『실담자
둔 신도국교화 정책에 의거 한 종교
기悉曇字記와 망월사본 진언집眞言集 연구』(공
저, 글익는들, 2004), 『을유불교산책』(정우서적, 정책의 시행에 있어 불교계는 탄압
2006), 『샨타라크쉬타의 중관사상』(불교시대
사, 2012)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과 억압을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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