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고경 - 2020년 2월호 Vol.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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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는 천만이나 되었습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

                만 근세의 비통한 일을 대략 거론하면서 눈물을 닦고 써 볼까
                합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삼경三京을 지키지 못한 채 만백성이

                어육魚肉이 되었고 또 정묘호란 때에는 서쪽 방이 함락되어 억
                조 창생이 결딴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해골이 들판을 덮고 핏

                물이 시내에 넘칠 정도가 되었는데, 부자父子가 모두 죽었으니
                누가 장사 지내고 누가 매장할 것이며 부처夫妻가 모두 죽었으

                니 누가 봉분封墳하고 누가 제사 지내겠습니까.
                아, 이것이 하늘 탓입니까, 사람 탓입니까. 아니면 명운입니

                까, 운수입니까. 어찌하여 사람이 도탄에 빠진 것이 이와 같이
                극도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입니까. 애달프게 살아 죽은 이

                를 슬퍼하며 흐느끼는 소리가 뒤섞여 들리는데, 저 창천은 죽
                이는 것을 싫어하니 음양의 조화를 해쳐 재앙이 일어날까 두렵

                습니다.
                만약 방외의 신력神力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원혼을 해탈하

                게 하기 어렵겠기에 산야山野에서 무궁한 대원을 세워 유정
                의 고혼을 구제하려고 합니다. 부모와 처자를 천도하려는 마

                음을 지닌 사람들 모두가 이 글을 읽고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
                다.”(『奇巖集』 권3 「楡岾寺普光殿基陛改築落成水陸勸善文」).



             법견 스님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으로 희생된 고혼들을 천도하기 위

           한 수륙재를 권선하는 글을 통해 당시 불교계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
           다.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명부전 존상은 당시 이러한 시대 상황

           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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