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20년 3월호 Vol.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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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는 일승분교에는 『보살영락본업경』과 『범망경』을 넣었다. 그는 일
승분교에 대승윤리에 해당하는 경전들을 배치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교판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공명정대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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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원효는 일승만교에 보현교普賢敎로서 보법普法 을 설하는 『화엄경』을
짝지었다. 이것은 그가 삼승을 별교와 통교로 가르는 기준이 ‘존재의 공
성’法空의 측면이었다면, 일승을 분교와 만교로 나누는 기준은 일체법에
두루하여 걸림이 없이 상입(相入, 상호 투영성)하고 상시(相是, 相卽, 상호 동일
성)하다는 ‘보법普法’의 측면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상판석은 불
설의 전관 아래 불학 전반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동적인 학문 방
법이었다. 이처럼‘격의’와 ‘교판’의 방법론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분과
학문으로 나아간 근현대불교학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주체적이고 능동적
인 학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불교학은 전승 불학의 주
체적 방법론(格義)과 능동적 방법론(敎判) 지닌 강점과 장점을 원용해 중도
적이고 창조적인 불(교)학을 수립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상시론지嘗試論之 - 사료에 대한 객관적 평가
‘상시론지’는 ‘자세히 조사해서 이를 논해 보면’이라는 관형구로 고전에
서 자주 활용된다. 이것은 서로 상반되는 이질적인 사료들의 기록을 소개
한 뒤 이들 사료들에 대해 사가史家가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이다. ‘상
시론지’는 하나의 사료에만 의지해 판단하지 않고 여러 사료들을 종합적
8) 表員集, 『華嚴經要決問答』 권2, 分敎義(『한불전』 2책, p.366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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