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고경 - 2020년 4월호 Vol.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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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후대 ‘교육
과 종교의 충돌’로 알려진 것으로, 곧 국가주의
적인 도덕 윤리와 기독교의 정신이 충돌하였을
때 국가를 대표하는 입장에 섰던 것이다. 1890
년 테츠지로가 독일에서 귀국하던 전년 1889년
에 일본은 헌법을 공포하고, 1890년에는 천황제
국가의 교육이념이 담긴 ‘교육칙어敎育勅語’가 발
이노우에 엔료.
표되고, 이것에 대한 해설서인 ‘칙어연의勅語衍
義’를 테츠지로는 저술하였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교육이념이 전파되는 시점에 1891년 기독교도인
우치무라 간죠內村鑑三의 ‘불경사건不敬事件’이 일어나고, 이것에 대해 테츠
지로의 인터뷰가 계기가 되어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는 ‘교육
과 종교의 충돌’이라는 사건이 전개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기독교에 대
한 비판은 국가적인 사안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기독교에 대한 신봉은 일
본에서는 에도 막부 시기부터 금지되었던 것으로,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중요한 잇슈가 되어 불교계에서는 다수의 비판서가 나타나고, 이노우에
엔료에게 이르러서는 더욱 치밀하고 세밀한 비판이 전개된다.
이노우에 엔료는 1858년 정토진종 대곡파 소속 사찰에서 태어나 종단
에서 육성한 영재교육을 받고 1881년 24세 때 도쿄 대학 철학과에 입학
한다. 도쿄 대학에 입학해서는 서양철학에 크게 자극을 받고 공부하여 철
학회 조직, 철학잡지 발행 등 일본학계의 철학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한
다. 엔료는 졸업에 임해 인도철학 연구, 국가관료 진출, 종단복귀 등 다
양한 진로가 열려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마다한 뒤 교육자 내지 불교
인으로서 길을 개척해 철학관哲學館을 세워 불교와 철학을 일반대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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