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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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7월 귀국한다. 이들 양 종단은 해외시찰로부터 귀국한 이후 종단

           의 개혁에 착수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동본원사파가 설립하는 교사교교敎
           師敎校와 육영교교育英敎校라 할 수 있다. 1875년 12월 새롭게 출발한 교사

           교교는 종단에서 건립한 학교의 교사를 양성하는 학교이며, 육영교교는
           종단의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였다. 이렇게 각각의 종단들은 종정宗政을 새

           롭게 개혁하는 가운데 서구에 종단의 인재를 유학시켰다.
             한편 서본원사에서는 1875년에 이마다테 토스이今立吐醉를 미국에,

           1881년 기타바타케 도류北畠道龍를 구미에, 1882년에는 후지에다 타쿠
           츠藤枝澤通와 후지시마 료온藤島了穩을 프랑스로, 스가 료호管了法를 영국

           에 파견하였다. 이에 대해 동본원사에서는 1876년 난조분유(南條文雄, 사
           진 1)와 가사하라 켄쥬笠原硏壽를 영국에 파견하였다. 근대 초기 이들 정토

           진종의 양兩 본원사는 경쟁적으로 서구의 시찰 및 유학생 등의 파견을 실
           행에 옮겼고, 이러한 노력들은 불교계의 위상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물론 다른 종단들에게도 크게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양 종단에
           서 파견한 유학승 가운데 일본에 돌아와 최초로 도쿄 대학에서 범어를 가

           르치며 불교계 위상 증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난조분유(南條文雄, 1849-
           1927 이하 난조로 표기)이다.

             난조는 1849년 현재의 기후현岐阜縣에 해당하는 미노美濃의 오가키大垣
           에 있는 진종대곡파의 절에서 태어났다. 메이지유신이 일어나던 1868년

           에는 대곡파의 교육기관인 고창학료高倉學寮에 입학하여 우수한 실력을 인
           정받았다. 이러한 우수한 능력으로 인해 당시 유명한 종학자 난조신코南條

           神興의 양자養子가 되어 양부養父와 함께 각지에서 강설과 설법을 하였다.
           1872년 5월 대곡파의 본산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여기에서 후에 영국으로

           함께 유학한 가사하라 켄주도 만나게 된다. 1873년 7월 그 전년 서구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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