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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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을 떠난 겐뇨 법사 일행이 귀국하여 종단의 새로

            운 개혁을 이루고 그것의 구체적인 결실로서 1875
            년 12월 교사교교와 육영교교가 설립되었다. 1876

            년 6월 난조와 가사하라는 종단의 명으로 영국에 유
            학의 길을 떠나게 된다. 영국에 도착하여 영어를 배

            운 뒤 1879년 2월 당시 옥스퍼드 대학 교수로 인도                 사진 2. 막스 뮐러.
            학, 범문학, 종교학 등에 있어 서구 최고의 학자로

            인정받던 막스 뮐러(Max Müller, 1828-1900, 사진 2)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난조가 막스 뮐러 교수의 제자가 된 1879년경 서구에서는 새로운 학

            문으로서 인도학 및 불교학이 영국을 비롯해 유럽전역에서 크게 성행하
            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막스 뮐러 교수를 비롯해 팔리어 학자로 팔리불

            전협회를 설립한 리즈 데이비스Rhys Davids 등이 활약하고 있었고, 독일
            에서는 인도의 자이교를 중심으로 산스크리트학 연구를 진행한 에른스트

            로이만Ernst Leumann, 인도학과 팔리학의 대가로 우파니샤드를 번역한
            폴 도이센Paul Deussen, 팔리어불전 연구로 이름 높았던 헤르만 올덴버그

            Hermann Oldenberg 등이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산스크리트어 판본의 발견에 크게 기여한 실벵 레비

            Sylvain Levi, 러시아에는 산스크리트경전의 출간에 열정을 쏟은 세르게이
            올덴부르그Sergey Fyodorovich Oldenburg, 벨기에에서도 한문에도 능통했던

            산스크리트학자인 루이 드라 발레 뿌셍Luois de La Vallée Poussin 등이 활약
            하고 있었다. 이렇게 유럽전역에서 인도학과 불교학, 범어학이 성행하던

            시기에 난조는 영국에 유학하였고, 막스 뮐러 교수 밑에서 범어학에 연구
            의 열정을 쏟고 일명 ‘난조 카탈로그’로 불리는 『대명삼장성교목록大明三藏

            聖敎目錄』을 완성해 학위를 받고 1884년 5월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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