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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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문자를 서사하고 독송하는 전통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산스
크리트가 불교 의례, 의식의 영역을 뛰어넘어 불교경전에 대한 연구로 전
통적인 한문경전과 비교 대조하여 그 차이점 등을 밝히는 불교학적 방법
론을 도입한 것은 난조에 의해 처음 이루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산스크
리트 문헌에 의거해 불교의 사상이나 철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정
착되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난조는 도쿄 대학 외에도 종문宗門의 대학이나 여타 불교계의 대학에
서도 범어와 영어를 가르치며, 불교학에 있어 산스크리트를 비롯해 팔리
어, 티베트어 등의 원전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난조의
주장은 당시 난조의 강의를 들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불교학
의 영역이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불교 원전어에 능
통한 다수의 연구자들이 나타나 불교경전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연구풍토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난조는 일본 불교학계에
서 서구의 문헌학적 방법론을 한문불교에 접목시켜 불교의 사상적 철학
적 의의를 폭넓게 만든 최초의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난조는 서양의 학문적 방법론을 일본에 전한 것은 물론 일본의 불교전
통을 서양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 일본의 불교전통을 서양에 알린다는
것은 동양의 불교를 국제화시키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동서양의 종교가
교류하는 계기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달리 말하면 동양불교의 국
제화,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기초가 형성된 것으로, 이것은 후에 ‘시카고
종교회의’에 일본 불교종단이 초대받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근대기 불
교의 학문적 방법론을 일신一新시키고 동양의 불교를 서양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난조분유는 메이지 시기(1868-1912) 일본 불교계가 만들어낸 총
아寵兒로 그 역할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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