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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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야식이 아니라, 진여와 진여의 활동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아타나
식으로 설정하였다. 아타나식은 ‘깨끗함과 더러움이 뒤섞여 있는 의식[진
망화합식眞妄和合識]’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은 더러운 종자에서 더러운
현상이 나타나고, 부처는 깨끗한 종자에서 깨끗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런
데 보살은 더러움과 깨끗함이 서로 생성될 수 있어서, 더러움과 깨끗함은
하나가 되고 진여의 일심으로 귀의하게 된다고 보았다.
『대승기신론』과 유식은 회통가능한가
태허는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진여와 유식 불교의 진여는 성격이 다르
다고 하였다. 『대승기신론』의 진여는 유식 불교와 달리 근본적인 지혜[근
본지根本智] 뿐만 아니라 실천 수행으로 얻는 후득지後得智도 함께 강조하는
체계라고 주장하였다. 그가 보기에, 유식 불교는 차별적인 현상 세계는 이
론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지만, 실천적인 평등 진여의 진실성을 잘 보여주
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차별의 형상을 떠나 일체법의 진여
실성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을 유식 법성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유식 불교와 『대승기신론』이 근본에서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다. 일견 대조
적으로 보이는 『대승기신론』과 유식 불교는 서로 융합될 수 있고 그렇게 다
른 것이 아님을 강조함으로써 『대승기신론』의 가치를 옹호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 태허는 기본적으로 중관 불교는 물론 유식 불교, 그리고 『대승
기신론』을 하나로 보는 원교圓敎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이런 입장은 『대승
기신론』과 중국불교의 내재적 관계를 생각해볼 때, 중국불교의 근본인 『대
승기신론』이 뒤엎어지면 근대 시기에 서양의 도전에 맞대응할 동력을 잃
게 되리라는 깊은 우려에서 나온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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