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8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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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5호 | ‘교의’는 티베트어 grub mtha’를 번역한
티베트불교 『장꺄교의론』 번역 1 | 중관파 1 것이다. 일본 학자들은 ‘학설강요學說綱要’로,
중국학자들은 ‘종의宗義’로 대개 옮긴다. 종
의는 ‘어떤 종파宗派의 교의敎義’라는 의미
용수의 생애·사상 다. 종파宗派라는 말은 중국불교에서 주로
사용하며 인도불교에 대해서는 통상 ‘학파學
派’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중관파·유식파라
[티베트] 장꺄롤뻬돌제* 지음
고 부르지 중관종·유식종이라고 말하지 않
[한 국] 조 병 활 옮김
는다. 게다가 티베트불교 교의론은 인도의
설일체유부·경량부·유식파·중관파 등 4
대 학파의 교의체계를 설명하고 있기에 종
의 보다는 ‘교의’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 그
래서 역자譯者는 grub mtha’를 ‘교의’로 옮긴
다. grub mtha’에는 학파, 교파敎派, 종취宗趣,
조병활 2012년 6월 북경대 철학과에서 교의敎義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어떤 학
북송 선학사상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 파·교파의 정해진 정설定說’이라는 뜻을 가
취득. 2018년 6월 중앙민족대 티베트
학연구원에서 티베트불교 연구로 박사학 진 산스끄리트어 siddhānta[한역漢譯은 실단悉
위 취득. 현 성철사상연구원장.
檀 혹은 실단다悉檀多]를 티베트어로 옮긴 말
* lcang skya rol pa’i rdo rje. 제3세 장꺄 활불(사진 3)을 말한다. 생졸년은 1717-1786. 4세 때 제3세
장꺄 활불(活佛, 윤회전승자)로 인정받아 암도 지방의 곤룽 사원(dgon lung dgon pa, 중국 칭하이셩靑海省 후주셴互
助縣에 위치, 사진 1·2)에 들어갔다. 8세 때인 1724년 청나라 옹정제(재위 1722-1735)의 초청을 받아 북경
에 도착, 후일의 건륭제와 함께 공부한다. 당시 장꺄는 티베트어·만주어·중국어·몽고어·겔룩파
의 교리 등을 배웠다. 1734년에 옹정제로부터 ‘관정보선광혜대국사灌頂普善廣慧大國師’라는 칭호를 받는
다. 장꺄의 업적 가운데 특기할 것은 건륭제 때인 1741-1742년 티베트어 대장경 땐규르(논소부) 전부
를 몽고어로 번역한 점. 강희제 당시 티베트어 대장경 깐규르(불설부)가 이미 몽고어로 번역되어 있었
기에, 장꺄가 땐규르를 몽고어로 번역하자 몽고어 대장경이 완비됐다. 게다가 1772-1779년 장꺄는
티베트어 대장경 깐규르 전부를 만주어로 옮겼다. 그는 『능엄경』을 한문에서 티베트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처럼 내·외전에 통달한 그가 1736년부터 1746년까지 10년에 걸쳐 쓴 책이 바로 이 『교의론』
이다. 그는 18세기 중후반의 티베트불교를 대표하는 가장 뛰어난 학승이자 수행승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번역에 사용된 『장꺄교의론』의 저본은 Grub mtha’ thub bstan lhun po’i mdzes rgyan, pe
cin:krung go’i bod kyi shes rig dpe skrun khang, 1989이다. ‘중관파 부분’ 가운데 극히 일부만 영
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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