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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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했다. 또한 많은 탑과 사찰을 세웠고, [인도] 대보리사의 금강보좌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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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석으로 격자 모양의 담을 세웠다. 길상제붕사원  탑의 장엄물을 세
                                                             19)
            우는 등 많은 업적으로 불법佛法에 수많은 이익을 주었다.  특히 대승의
            가르침이 쇠미해졌을 때 그 가르침을 되살렸고,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붓
            다만큼이나 큰 은혜를 베풀어 널리 퍼지도록 했다.

              중국어로 번역된 몇몇 인도의 사서史書에는 『화엄경』 역시 용수 보살이
            용龍들이 사는 곳에서 인간 세상으로 갖고 왔다고 한다. 인도와 티베트의

            옛 문헌들에도 『십만송 반야경』 이라고 [말들이] 나온다. 용수 보살이 용
            들이 사는 곳에서 인간 세상으로 갖고 온 대승경전이 『반야경』뿐만은 아

            닌 것이 분명하다. 인간 세상에 몇 년 동안 머물렀는지[얼마나 오랫동안 살
            았는지]에 대해서도 일치하지 않는 여러 설명들이 있는데, 6백 년 동안 머

            물렀다는 것은 경전의 예언과도 일치하지만, 일체지자一切智者 부뙨(1290-
                20)
            1364) 과 쫑카파 역시 이를 합리적인 견해로 여겼다.
              용수 보살은 세 번이나 법法을 크게 설파했다고 하는데 ‘법을 세 번이
            나 크게 설파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한 것이 이
                                           21)
            전의 전적이나 쫑카파 사제師弟 3인 의 저서에 나오지 않는다. 다른 종
            파의 몇몇 학자들은 용수 보살이 첫 번째로 법을 크게 설파한 것은 비구







            17)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자리. 인도 붓다가야 대보리사에 있다.
            18)  dpal ldan ’bras spungs.

            19)  “용수 보살은”부터 여기까지는 『부뙨불교사』에 기록되어 있는 용수 보살의 전기를 인용한 것이다.

              Bu ston chos ’byung, pe cin:krung go’i bod kyi shes rig dpe skrun khang, 1988, pp.145-
              147.

            20)  『부뙨불교사』의 저자. 나탕판 땐규르(논서부論書部)를 편찬한 학승. 현교와 밀교, 티베트의 여러 학문들
              에 대해 2백 여 종의 저서를 남겼다.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에서 가까운 샤루 사원zhwa lu dgon pa
              에 주석했었다.

            21)  쫑카파, 갤찹달마린첸(1364-1431), 캐춥게렉뺄상(1385-1438) 등 3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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