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1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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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의를 분별한 선설장론』(『선설장론善說藏論』, legs bshad snying po)에서 “요
의경了義經의 의미가 다른 것으로 인도되면 그 의미가 손괴損壞되고, 다
른 것으로 해석될 수 없는 의미 그것이 요의가 됨이 이치상理致上으로 잘
결택되고, 반드시 요의의 의미를 따라서만 밀의密意를 찾을 필요가 있
다.”고 말했기에, 이런 [판단의] 정황은 여기서도 비슷하다. 갤찹달마린첸
26)
의 『해설장장엄解說藏莊嚴』 과 캐춥게렉뺄상의 『똥툰첸모』에 나오는 ‘길을
개창했다’는 의미 역시 그처럼[『선설장론』처럼] 말한 것이다. [자세히 쓰면] 내
용이 많아질 것이기에 기술하지 않는다. ‘길을 개창했다’는 의미를 이와
같이 인식한다면 지존至尊 미륵 보살이 중관파의 길을 개창하지 않았음과
용수 보살만이 중관파의 길을 열었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불호 논사가 중관귀류파 이론체계의 길을 열었다면, 청변 논사
자신과 불호 논사 둘은 중관자립파이므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어진다. 청변 논사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왜 그러냐[분명
하냐]고 물으면, 이것에 대해 쫑카파가 명백하게 말했다. 『선설장론』에서
“청변 논사 역시 불호 논사와 자신이 자립논증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
느냐가 불일치不一致하다고 생각하지 않고[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
립논증을 당연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인식한 것 같다. 그런 이
유로 청변 논사 자신과 불호 논사 사이에는 법(法, chos)과 보특가라(人我,
個我, gang zag)의 자성을 배척排斥하는 부정대상dgag bya에도 차이가 있다
27)
고 보지 않았다.” 라고 쫑카파가 말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관귀류파
26) rnam bshad snying po rgyan.
27) rJe tsong kha pa’i gsung ’bum 14, legs bshad snying po, pe cin:krung go’i bod rig pa dpe
skrun khang, 2012,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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