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7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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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호 논사와 궤범사軌範師 연화생 논사의 제자인 예세데[ye shes sde, 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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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軍]는 『견해비망록見解備忘錄』 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용수 보살의 이
론체계를 중심으로 하면서 유가행중관자립파의 방식도 그대로 따르고 있
다. 그 후 궤범사 연화생 논사는 인도로 돌아가고, 친교사 적호 논사는
[티베트에서] 입적했다. 그 때 마하연이 당나라에서 티베트에 들어왔다. 그
는 ‘마음에 어떤 것도 하지 마라!’라는 견해를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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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들을 지어 자신의 관점을 퍼트렸다. 무조사장춥 왕비王妃 등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그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다. 방편方便을 말살시키는 그
런 방식은 인도의 논사들이 전해준 체계와 일치하지 않을 뿐더러 [그 방식
을 따르는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선행을 행하지 않자, 짼뽀[체송데짼]는 [마하연
의 방식은] 불교의 청정한 가르침이 아님을 알게 됐다. 적호 논사의 유언에
따라 연화계 논사를 초청했다.
연화계 논사는 경전과 이치의 방식으로 마하연을 완전히 굴복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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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광명론』 등 분별지分別智[묘관찰지妙觀察智] 를 찬양하는 논서論書를
많이 지어, 가르침과 들음의 방법으로 [중관의] 이론체계를 발전시켰다.
당시 짼뽀는 “이후로 관점은 용수 보살의 가르침대로 하고, 마하연 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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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방식대로 하면 처벌하겠다.” 고 공포했다. 따라서 전홍기前弘期 시기
유식파의 견해를 가진 몇몇 대학자들이 [티베트에] 나타났으나 [견해의] 중
36) 예세데가 쓴 『견차별見差別lta ba khyad par』을 가리킨다.
37) mu ’bro za byang chub.
38) so sor rtog pa’i shes rab.
39) 이 구절은 티베트 고대 역사서 『바세』에 나온다. 연화계와 마하연이 주역으로 참석한 삼예종론이 연
화계의 승리로 끝난 후, 짼뽀 치송데짼은 “견해(관점)는 나가르주나의 것을 따르고 수행은 지止와 관
觀을 닦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rBa bzhed phyogs bsgrigs, pe cin:mi rigs dpe skrun khang,
2009,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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