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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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체계를 중심으로 삼았다.

             아티샤 존자가 티베트에 들어온 후 티베트의 종사宗師들이 자신들의
           견해를 밝혀 [아티샤에게] 올리자, 아티샤 존자는 기뻐하지 않았다. [대신]

           “견해가 어떻게 나타났든, 보리심을 수행하도록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후일 좀된빠(1005-1064)가 월칭 논사의 관점체계觀點體系를 깨닫고 올리자

           아티샤가 크게 기뻐하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모으고 “매우 기이하도다!
           지금 인도의 동방에는 이 견해만 지켜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

           티샤 존자로부터 전해진 ‘까담빠’라고 알려진 ‘청정전기淸淨傳記의 구경자
           究竟者’들 가운데 뽀토와 등 유명한 삼형제의 도차제道次第와 설법집說法集

           에는, 월칭의 관점과 같은 부분이 매우 많은 ‘중관中觀의 견해’가 나온다.
                                    45)
             역경사譯經師 옥로 사제師弟 는 청변과 월칭의 논서들을 적지 않게 인
           용하지만 견지한 관점은 적호 사제와 같은 점이 매우 많이 나타난다. 세
               46)
           링빠 로부터 전해진 몇몇 ‘마음 수행법’의 풍격風格은 유식가상파唯識假
           相派의 체계와 일치한다. 그런데 다른 관점들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인도
           논서들의 함의含意를 ‘설명’할 줄 아는 계승자는 매우 드물다.










           45)  rngog lo yab sras. 옥렉빼세랍rngog legs pa'i shes rab과 옥로덴세랍(rngog blo ldan shes rab, 1059-
              1109)을 가리킨다. 전자는 숙부, 후자는 전자의 조카이자 제자. 아티샤의 제자인 옥렉뻬세랍은
              중관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청변이 지은 『중관심론』과 이 책에 대해 청변이 직접 주석한 『사택염』을
              번역해 줄 것을 아티샤에게 요청하고, 본인도 번역에 참여했다. 아티샤가 입적한 지 거의 20년이
              되던 1073년 쌍뿌 지방에 쌍뿌네우톡 사원을 건립하며, 이 사원은 11-12세기 불교연구의 중심지가
              된다. 옥로덴세랍은 캐시미르로 유학 가 17년 동안(1076-1093) 머물며 산스크리트어, 현종, 밀종
              등을 세밀하고 광범위하게 배우고 연구했다. 귀국한 그는 『양결정론量決定論』, 『보성론』, 『법법성론』,
              『중변분별론』, 『현증장엄론』, 『장엄경론』 등을 티베트 말로 옮겼다. 이들 사제는 인명因明을 중시했다.
           46)  금주金洲의 수행자’라는 의미. 금주는 지금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혹은 미얀마 남부 지방으로
              ‘

              추정된다. 세링빠의 본명은 수와르나드위빠 다르마키르티, 유식의 견해를 지녔다. 아티샤가 한동안
              그의 처소에 머물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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