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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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간다면 바로 옆에서 화산이 폭발해도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소리는
나의 중추신경계가 그려낸 것일 뿐이다.
인간은 대체로 20Hz에서 2만Hz까지의 진동을 감지한다. 이를 가청
주파수라고 한다. 박쥐나 돌고래는 훨씬 높은 진동수의 초음파를 들을 수
있다. 인간의 뇌가 해석하지 않는 공기의 진동을 박쥐나 돌고래의 뇌가
해석한다는 것이다. 모든 음파를 듣는 게 아니라, 박쥐든 돌고래든 우리
든 들을 수 있는 것만을 듣는다.
소리라는 실체가 있어 나에게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다. 소리는 나
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의 진동을 나의 뇌가 해석한 것이
다. 공기의 진동이라는 인因이 나의 몸을 비롯한 무수한 연緣을 거치면서
소리라는 과果가 만들어진 것이다.
안식眼識
안식을 살펴보자. 논리적으로는 이식과 마찬가지다. 내 눈 앞에 놓인
사과를 본다는 과정은 사과에서 붉은 색 파장의 전자기파electromagnetic
wave가 나오면서 시작된다. 전자기파가 내 눈의 수정체를 거쳐 망막에 도
달하고, 그 에너지가 망막 신경을 자극하고, 시신경이 이 자극을 뇌로 전
달하고, 뇌가 이를 해석함으로써 물체가 나타난다.
다시, 나의 뇌가 해석한 붉은 색은 어디에도 없다. 나의 뇌가 붉은 색
이라고 감지하는 전자기파가 있을 뿐이다. 전자기파라는 인因이 수정체,
망막, 시신경, 뇌 등의 연緣을 거치면서 안식이라는 과果로 나타난 것이
다. 색깔은 뇌가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뇌가 해석할 수 있는 색깔인 가시
광선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색깔이라는 실체가 있어 나에게 색깔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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