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고경 - 2020년 5월호 Vol.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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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는 체험이었다고 한다. 또, 의식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식

           이전에 몸이 세계를 감각하면서 그 세계에 맞추어 몸이 움직이는 것을 체
           험했다고 한다. 그럼, 실제의 세계란 무엇인가? 실제의 세계는 과연 존재

           하는 것인가?



             피연생과彼緣生果의 연기론



             법계의 모든 존재가 인연에 따라 생한다는 것을 인연생기因緣生起 혹은 연

           기緣起라고 한다. 연기는 연緣에 기대어 결과가 만들어진다는 피연생과彼緣
           生果의 의미를 갖는다. 인연因緣에서 인因은 직접적 원인이고 연緣은 간접적
           조건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피연생과란 직접적 원인인 인因이

           간접적 조건인 연緣에 기대어 과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연緣이 아니면

           과果가 없다는 것이기도 하고, 연緣의 개입으로 인因은 과果와 같을 수 없다
           는 것이기도 하다. 이숙異熟이다.
             이처럼 연緣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불교의 연기론은 여타의 인과론과

           다르다. 보통의 인과론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 원인에만 거의 전적
           으로 주목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어떤 불씨가 그 화재의 원인이었

           는지를 찾아내려고 한다. 인화물질이 주변에 있어 불이 급속하게 번진 경
           우에는 인화물질이 불씨 자체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화재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씨가 없었다면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인화
           물질을 화재의 원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피상적 세계관이 반

           영된 보통의 인과론이 취하는 입장이다.
             불교의 연기론은 이와 상당히 다른 입장에서 인과를 바라본다. 하나의

           씨앗이 싹이 되는 사건을 살펴보자. 싹이 나왔다는 것은 씨앗이 없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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