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2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P. 122
이 실제로 공한 존재[의 의미]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용수 보살
은] 『육십송여리론』에서 “의지해 나온 모든 사물[존재]은, 물속의 달과 같
은 것. 진실한 것도 아니고 그 반대[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물속의 달
57)
을]갖고 싶어도 보는 것으로 낚아채지 못한다.” 고 말했다. 그리고 『삼매
왕경』에는 “있음과 없음이라고 말함은 두 변邊,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함
역시 변邊. 따라서 두 변을 완전히 버리고, 현명한 사람은 가운데에도 머
무르지 않는다.”고 나오고, 미륵 보살은 『현관장엄론』에서 “이쪽 변邊과
저쪽 변에도 아니고, 중간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들의 평등성을 알
58)
기에, 반야바라밀이라 한다.” 고 말했다. [위의 인용문에 대해] ‘양변을 버리
고 가운데에 머무르는 것을 비판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지 모르나, 거
꾸로 이해하고서 중관파의 체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등 잘못 말하는 사
람들이 많이 나오므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들 경전과 논서들은 실체론자
59)
實體論者 들처럼 변견을 조금 비판한 뒤, 변邊을 떠난 중[中, 가운데]을 실
체로 집착하고, 그곳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변邊을 떠난 중中은 없
60)
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나? 세친 논사는 『석궤론釋軌論』 에서 “변邊은 다
한[盡] 것과 마지막 부분, 가까운 것 그리고 방위方位와 아래 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변邊에는 많은 의미가 있지만, 여기서 변邊의 의미는 까
말라씰라[연화계蓮花戒] 논사가 말한 것과 같다. 그는 『중관광명론中觀光明
61)
論』 에서 “만약 중관中觀에 대해, 마음의 본성의 실체인 승의제는 무엇이
57) 『육십송여리론』 제45번째 게송이다.
58) 제3장 『일체종지품』의 첫 번째 게송이다.
59) dngos por smra ba.
60) rNam bshad rig pa.
61) dBu ma snang ba.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