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1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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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집성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상견을 배척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외경
[外境, 객관]에 기대어 객관과 주관이 언어상[개념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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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감손減損하고, 의타기성이 실제로 없는 데도 있다고 증익增益 하므
로 상견과 단견의 어느 하나에 떨어졌다. 중관파의 관점만이 유변과 무변
의 변견에 떨어지지 않고 상견과 단견의 잘못으로부터 벗어났지 다른 교
파의 주장은 그렇지 못하다.
덕을 구비한 존자 월칭이 지은 『명구론』에 “의타기성은 심과 심소에서
나타난 사물정도임을 인정하고 거기에는 변계소집성의 자성이 없다며 유
견有見을 떨치고, 의타기성의 사물 모두 번뇌와 청정의 원인이 되는 정도
가 있다며 무견無見을 떨쳐버린다. 만약 그렇다면 변계소집성은 있는 것
이 아니고 의타기성은 있는 것이므로 유견과 무견 둘 모두 있는 것이 되
므로, 변견을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와 “따라서 그처럼 중관파의
관점만이 유견과 무견에 떨어지는 잘못이 없으며, 유식파의 관점 등은 그
렇지 않다는 것을 알도록 하라.”고 나온다.
용수 보살은 [『중관보만론』에서] “보특가라를 오온으로 말하는, 세간의 수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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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파 와 나형파裸形派 등에 대해, 유有·무無를 떠났냐고 묻는다. 때문
에 붓다의 가르침은 불사不死이고, 유와 무를 넘어선 의미가 깊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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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과 같지 않은 가르침”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상견과 단견에서 벗어나
고자 한다면 보특가라와 제법諸法은 연기적 존재이자 물에 비친 달과 같
53) ‘있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을 skur ’debs[감손減損],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을 sgro ’dogs[증익增益]
이라고 말한다.
54) 인도 고대 육파철학의 수론파를 말한다.
55) 자이나교의 나형파를 말한다.
56) 『중관보만론中觀寶鬘論』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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