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6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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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기 때문에 경전 자체를 요의와 불요의의 보기·사례事例 로 이해해야
된다. 『중관광명론』에는 “그렇다면 승의제를 말하는 것만이 요의이고, 그
반대는 불요의라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된다.”라고 실려 있고, “무
생無生 등 역시 무진혜 보살이 말한 것에서 요의임을 알 수 있다고 설명
했다.”고 나온다. ‘말하는 내용[소전所詮]’의 견지에서 요의와 불요의를 구
분하면 다른 것으로 인도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의미 그 자
체’에 요의와 불요의를 확립해야 하므로 세속제를 불요의로, 승의제를 요
의로 정립한다. 『성입일체제불경계지광장엄대승경聖入一切諸佛境界智光莊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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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乘經』 에 “요의인 것은 무엇이나 승의제이다.”고 나오는데, 앞에서 인
용한 『삼매왕경』도 [이렇게 요의를] 증명했다.
또한 [까말라씰라 논사가 지은] 『수습차제중편』에서 “세존의 모든 말씀은
정확하게 하신 것이다.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진실을 분명하게 드
러냈고, 진실에 들어가는 그 자체이다.”라고 말한 대로, 붓다의 모든 가
르침은 해탈을 증득하기 위해 하신 것이다. 세속제 정도에만 익숙해서는
해탈을 증득할 수 없고, 그것에서 다른 것으로 인도되어, 공성을 찾아 수
행한 힘으로 해탈을 얻을 수 있음을 아는 것과 연관된다. 『반야경』에 “색
色이 없고[무색無色], 색이 태어나는 곳도 없다[無色生處].”는 등을 말한 것
은 요의경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 경전들은 [사실] 문자와 함의含意가 서로 어긋나는 경전들이 아니다.
103) mtshan gzhi. 이 단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①어떤 개념의 정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
례, 사상事相[사물의 모습]; ②모범적인 예[범례範例] 등이다. 여기서는 ①이나 ② 가운데 어느 것으로 해
석해도 된다.
104) 이 경의 한역본漢譯本은 『대정신수대장경』 제12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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