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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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성自性이 있다’ 혹은 ‘인因과 연緣에 의지해야 한다’는 [서로] 모순되고

           [논리에] 방해妨害되는 것들을 많이 설명했고, ‘진실의 자성은 없다’거나 ‘속
           박과 해탈의 원리 전체가 합리적임을 여러 이유들로 증명한 것은 『반야

           경』 등 공성空性을 설명하는 경전들이 요의경임을 증명한 것이며, 그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경전들은 불요의임을 증명한 것이다. 따라

           서 [용수 보살이] 『근본중송』 등 중관이취육론中觀理趣六論으로 요의와 불요
           의를 구분하는 대승의 길을 열었고, 용수 보살 본인이 『무진혜경』에 의지

           해 요의와 불요의를 구분하는 방식을 의미상 설명한 상황도 그것에 의거
           해 알아야 한다.

             그러면 『해심밀경』에서 “의타기성이 진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106)
           삼성三性 을 비방하는 견해가 생긴다.”고 말하는 것[구절]을 어떻게 이해
                                          107)
           해야 할까? 이것은 대승의 종성種姓 이지만 공성空性을 깨달을 지혜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또한] “의타기성은 진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 그 자체를 비방하는 견해에 대해, 공성
           을 깨달은 뛰어난 지혜를 구비한 사람들이 [비방하는 견해를] 비판할 방편으

           로 [이 말을] 활용하기 위해서 [한 말]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반야경』 등
           두 번째 법륜에서 붓다가 말씀하신 경전들은 요의경이며, 『해심밀경』에

           나오는 세 번째 법륜에서 붓다가 말씀하신 경전들은 불요의경이다. 중생
           들과 연관해 세 번째 법륜의 경전들은 요의경이고, 두 번째 경전들은 불

           요의경이라고 간주해도 모순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아








           106)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

           107)  대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질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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