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0 - 고경 - 2020년 6월호 Vol.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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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부처도 필요 없고, 조사祖師도 필요 없고, 팔만대장경도 다
필요 없습니다. 부처다, 조사다 하는 것은 다 중생의 꿈을 깨우기 위한 약
에 지나지 않습니다. 약! 중생의 근본병인 꿈을 완전히 깨우고 나면 약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병이 있을 때 약이 필요하지 병이 다 낫고 나면 약
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 참다운 해탈을 성취하면
그때 가서는 부처도 필요 없고 조사도 필요 없는 참다운 대자유입니다.
“장부가 스스로 하늘 찌르는 기운 있거니 丈夫自有沖天氣,
부처가 간 길은 가지 않는다. 不向如來行處行.” 6)
내 길, 내가 갈 길이 분명히 다 있는데 무엇 한다고 부처니 조사니 하
여 딴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가느냐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불교의 참다
운 대자유 대자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교 일반에 대해 조금 이야기하겠습니다. 종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개 초월신超越神을 주장합니다. 이 현상계現象界를 떠난 저 천상
에 있는 초월신을 주장하면서, 모든 것을 그 초월신에 맡기고 그 밑에 무
조건 절대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초월신의 뜻대로 되게
해주시오, 이런 식입니다. 이리하여 죽고 나면 그 초월신이 사는 곳에 가
서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초월신을 섬기면서.
그러나 자기 자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일거일동이 초월신의 지배하에
서 초월신의 뜻대로 살 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초월신의 속박을
6) 『천목중봉화상광록』 권제4지3 등 여러 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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