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5 - 고경 - 2020년 7월호 Vol.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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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증득하는 그런 어떤 것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세속제
의 모습을 안립安立하는 것과 모순된다. 경전에서 세속제의 존재[法]가 없
다면 승의제를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유식파인 그대가 [이렇게] “외경外境이 없어도 이름과 부호符
號에 의지해 의미의 기표記標(부호)가 나타나게 된다. 그로부터 항상 모든 분
39)
별이 생기므로 변계소집성은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 으로 말하는 것이 합
리적”이고 한다면, [청변 논사는 말하기를] 이 역시 불합리하다. “이름과 문자,
의미를 품은 구절 , 부호符號 등을 모르는 짐승인 새와 야수野獸 들에게
40)
도 크나큰 번뇌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되기에, 그 번뇌들을 생기게 하는 대
상·형상形象 등의 외경은 존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중관심론』은 “이름이 없어도 번뇌가 있고, [외경外境은] 이름에 의미가 생기
는 것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소리를 모르는 짐승들도 번뇌가 생기는
것을 보기 때문에”라고 했고, [이어지는] 뒷면의 주석에서 “무엇에라도 의지
해 번뇌가 생기게 되므로 형상 등의 외경外境들이 있을 따름임을 알아라!”
고 설명했다.
한편, 유식파 당신들이 의타기성은 자상自相이 있다고 우리(중관자속파)들
에게 증명해도 의미가 없다. 세속에서 성립되면 이미 증명된 것을 증명하
는 것이 되고, 우리들 또한 의타기성은 세속제에서 자상으로 성립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승의제에서 자상이 있다고 증명하는 것은 더욱 불합
39) mtshan nyid ngo bo nyid med pa nyid. 삼무자성성三無自性性의 하나.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
하는 변계소집의 여러 존재들은, 반점 있는 끈을 꽃뱀으로 오해하듯이, 실제로는 있는 것이 아니다.
상무자성성은 이를 말한다.
40) nges pa’i tshig. 통상 ‘언사言詞’로 번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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