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1 - 고경 - 2020년 8월호 Vol. 88
P. 111

와 향, 시를 보낸 것에 감사하며」의 협주夾註이다. 그의 설명에 “마침 최이
            가 순천 지주사가 되어 편지와 함께 차와 향, 『능엄경』을 보냈다. 사자가 돌
            아가며 답장을 청했다. 스님은 ‘나는 이미 속세를 벗어났으니 편지는 왕복

            하여 무엇 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 사자가 하도 졸라대므로 이 시를

            써 주었다[崔怡爲順天知奏事, 以書遺茶香及楞嚴經. 使還請報書, 師曰: ‘何修書往?’ 使
            强迫之, 且以詩贈].”고 하였다.
              여읜 학은 수행하는 자신을 말하는 듯하고 천리 밖 먼 곳에 있어도 수

            행자의 삶은 매한가지일 터인데 구태여 회신을 보내 안부를 전할 것이 무

            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차와
            향을 보낸 최이는 최충헌을 이어 고려의 권력을 장악한 권력자로, 무신정
            권기에 강화 천도遷都를 결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강화 천도는 원의

            정치적인 장악력을 피해 보려는 의도였지만 결국 개경 환도이후 무신정권

            의 조종弔鐘이 울렸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최이는 강화 천
            도처럼 환난 중에 있는데도 1245년에 연등회를 장황하게 열었다. 이는 『고
            려사』 「열전」의 기사에서 확인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 4월8일 최이가 연등회燃燈會를 열어 채붕彩棚을 설치하고 기
                 악伎樂과 각종 놀이를 벌이게 해 밤새도록 즐기니, 구경하는 강
                 화경江華京의 남녀들이 담을 이루었다. 5월에 사공司空 이상의

                 종실과 재추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채붕을 산처럼 높게 설치하

                 고, 비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친 후, 그 가운데 그네를 매
                 달아 수놓은 비단과 화려한 조화造花로 장식하였다.”



              무신정권 말기의 현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원나라가 침략해 강화로 천



                                                                        109
   106   107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