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고경 - 2020년 8월호 Vol.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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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질서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법
을 매개로 한 연기적 관계로 파악한 스님은 가을 들판에 출렁이는 황금물
결이 부처님들의 공양구이고, 계곡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일체를 해갈
시키는 무상無上의 감로수로 본다. 이 감로수를 백옥 잔에 가득 부어 부모
조상 형제자매 서로 권할 때에 붉은 머리 흰 학들은 춤을 추고, 꽃사슴은
흥을 못 이겨 녹음방초綠陰芳草 뒷동산에 뛰어노는 것으로 노래한다. 이곳
이 성현달사 악마요부가 본래불의 마음으로 무생곡無生曲을 합주하며, 서
로가 부모형제 되어 일체가 융화하여 시비장단이 없고 싸움이 없는 극락
정토이다. 현상계의 상대적인 세계 즉, 유무·색공·선악·미오·시비 등 분
별의 세계를 초월한 하나의 세계를 의미하는 일색변一色邊은 이를 두고 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우주적 화음은 갈등과 대립에 익숙한 인간을 천지
화육天地化育에 동참하게 만들며 상호 유기적이며 통합적인 삶의 경지에 이
르게 한다. 그래서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스님은 부귀영화를 꿈꾸며 사방
으로 날뛰는 어리석은 우리 중생들에게 본래불의 장엄한 세계를 바로 볼
것을 역설하고 있다.
성철 스님이 태어났던 생가는 2001년 3월 겁외사劫外寺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고, 2014년 성철스님기념관도 건립되었다.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
보고 있는 겁외사는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시간 밖의 절’이란 뜻
이다. 곧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이다. 스님의 담대한 출가 정신과 법향을
느낄 수 있는 겁외사는 곧 대립적인 시비분별이 끊어진 청정 일색변의 깨
달음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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