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9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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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삶을 즐기는 여유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세기 동안 미친 듯
이 달려온 우리사회도 이제 휴식이 중요해졌고, 한번 뿐인 인생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근면과 휴식의 문제는 수행자의 삶에서도 중요한 이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수행자의 중요한 덕목에 중에도 쉼[休]이 있기 때문이다. 수행
자의 삶은 세속적 욕망과 질주의 멈춤[止]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맥락에
서 ‘쉬고 또 쉬라’는 『벽암록』의 ‘휴거헐거休去歇去’는 선가에서 자주 목격하
는 격언이다. 내면에서 타오르는 마음을 쉬고, 욕망의 대상을 쫓아가는 몸
짓도 쉬라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근면과 성실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쉼은 모
든 삶의 행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관성적 삶의 멈춤이며, 욕망의 대상을
향한 질주의 멈춤이다. 따라서 멈춤은 단지 멈추기 위함이 아니라 바른 방
향으로 전환하기 위한 한 과정이다. 쉼 역시 나태와 게으른 삶을 추구하라
는 것이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의 질주를 멈추고 바른 방향으로의 정진으
로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수행과 정진에서는 여전히 근면과 성실이 중요
한 덕목이 된다.
불교에서 근면과 성실을 이야기할 때 정진精進과 함께 등장하는 말이
‘방일하지 말라’는 ‘불방일’이다. ‘방일放逸’이란 마음의 긴장이 풀어져 나태
해진 상태를 말한다. 교학적 맥락에서 방일은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선善의 실천을 게을리 하고, 나쁜 쪽으로 흘러가게 하는 마음작용을 말한
다. 방일에서 방放은 ‘놓는다’는 뜻이고, 일逸은 ‘달아나다’는 뜻이다. 따라
서 방일의 사전적 의미는 ‘해야 할 일을 팽개치고 거리낌 없이 노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규율과 절제를 잃어버리고 정신 줄 놓고 자신을 돌보지 않
는 방종放縱이나 방기放棄와 비슷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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