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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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차를 만드는 모습, 조선 전기에도 이런 차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좌선으로 보내는 세월, 선열만 만끽할 따름! 但將禪悅坐經年.
윗글은 『함허당득통화상어록涵虛堂得通和尙語錄』에 수록된 다시茶詩다.
기화는 그의 휘諱이다. 그의 『현정론顯正論』에서 인을 주장하는 유교에서
살생을 금하지 않는 것에 의심을 가졌는데, 불교의 자비 사상에서 크게 깨
달음이 있어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회암사에서 무학 대사의 가르침을
받았고, 지공·나옹·무학 같은 삼대 화상의 법을 이었다. 그런데 그가 산
이 깊고 골짜기가 깊은 산사에서 구름과 달을 벗 삼아 수행하던 곳은 어
딜까? 그가 1420년경 오대산 월정사에 머물렀다고 하니 차를 마시며 선열
에 들었던 장소로는 최적의 수행처일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야말로 골이
깊고 산이 깊은 사찰임에랴. 향기로운 차 향기가 화로와 당상으로 퍼졌으
니 이는 선미를 만끽한 수행자의 차 생활을 잘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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