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7 - 고경 - 2020년 9월호 Vol.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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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향기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당상까지 퍼진 맑은 차 향기는 주변을
            정화하는 기운을 지녔을 터다. 더구나 구름과 달, 속기마저 떨어진 승방은

            선미의 극치를 실증하는 공간이다. 이런 곳에서 함허 득통은 여말선초麗末
            鮮初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도 불교의 곧은 법통을 지켜냈으리라.

              이 밖에도 조선 전기 문인에게 차의 진정한 가치를 전했던 선가의 유풍
            은 유지됐는데, 하연(河演, 1376-1453)의 「지리산 스님이 새 차를 보내다[智異
            山僧送新茶]」에 그런 내용이 담겼다.




              진주의 기후, 섣달 전에 봄이 오니                        晉池風味臘前春
              지리산 아래 초목들도 새싹이 텄겠지.                       智異山邊草樹新.
              정미한 차는 끓이면 더욱 좋아                           金屑玉糜煎更好

              맑고 묘한 색향에 더욱 진기한 맛이라.                      色淸香絶味尤珍.



              하연은 조선 전기 대표적인 문장가로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그에게
            차를 보낸 스님이 누구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리산에서 수행하는 출

            가자였을 것이다. 지리산은 명차가 나는 곳,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천은

            사 등 주요한 사찰이 산재해 있던 명산이다. 그가 받은 차는 아마도 화엄
            사나 쌍계사 일원에서 나는 찻잎으로 만든 차요, 더구나 선춘(先春, 이른 봄)
            에 돋은 황아黃芽로 만들었을 터이니 차색은 맑디맑고, 차 향기마저 그윽

            하여 맛을 논할 필요가 없는 명차였다. 고려는 망해도 조선 전기까지 명차

            를 생산할 기반이 사찰에 있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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