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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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작용의 하나라고 본다. 예컨대 차에 대한 인식은 여러 차례 차를 눈
으로 보고 마셔봄으로써 차 아닌 것들, 즉 물, 국물, 기름, 술 등과 구별하
고, 각종 차, 즉 커피, 홍차, 녹차, 보리차 등으로부터 그 공통된 의미를 추
출해낸 뒤, 차를 보면 곧 인식할 수 있다. 이 때 차 개념이 가장 분명해진
다. 이렇게 개념을 구성하는 작용은 구별分과 종합合이라는 두 작용으로
나누어지며, 이 구별과 종합의 작용이 바로 비량이다.
우리는 인식할 때 먼저 현량에 의지하지만, 현량, 즉 감각에만 의지한
다면 얻는 것은 잡다한 영상에 불과할 것이다. 반드시 비량으로 각 감각
에서 공통점을 종합하고 그 차이점을 구별해야 비로소 정확하고 명료한
개념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유식학은 현량과 비량만 승인할 뿐이며,
이 때문에 유식학은 이 두 양을 경영하여 이루어진다는 논의가 타당성을
갖게 된다.
베르그송은 항상 형이상학은 과학의 방법을 써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
조하였다. 반면에 양수명은 유식 불교가 심리학, 생물학에서와 다르지 않
은 이지의 방법, 과학의 방법을 쓰고 있다고 보고 있으니, 당연히 베르그
송과 유식학의 철학적 방법론은 상반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양
수명은 “베르그송이 중시하는 ‘창조’, ‘지속’과 같은 부류의 관념은 모두 유
식 불교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베르그송은 부분들의 결합으로 전체를 보는 시각을 부정한 반면에, 유
식학은 상분이나 견분, 51심소법 등 기본적으로 마음을 다수의 부분들로
분석하고 그 부분들의 결합을 통해 설명하려는 방법을 취한다. 추리, 추
론의 뜻을 가지는 비량은 당연히 분석적 방법, 정적인 방법에 해당하므로,
베르그송의 전체의 직관, 본능적인 파악, 동적인 인식과는 대치된다. 베
르그송의 직관으로 얻어지는 내용은 ‘본능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비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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