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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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를 연구하였다. 예
                                                         컨대  태허는  유식
                                                         불교에서  말나식이

                                                         아라야식에 집착하

                                                         여  자아라고  여기
                                                         는 것이 독일 데카
                                                         르트가  “나는  생각

                                                         한다.  그러므로  나
           사진 3. 1948년 중경에서 『중국문화요의』를 집필하고 있는 양수명.
                                                         는  존재한다.”고  한
           견해와 같다고 보았다. 당대원은 유식 불교가 가장 체계적이고 설명 방식
           이 뛰어나 과학보다 뛰어나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웅십력의 『신유식론』, 류

           풍림의 『유식금석』, 주옥창의 『유식신해』 등 서양철학으로 유식 불교를 설

           명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한편 유식 불교에 의거하여 서양 종교나 과학, 서양철학을 비판하려는
           시도도 많이 이루어졌다. 특히 철학적인 측면에서 서양 종교인 기독교의

           신앙적 기초인 신(神=上帝)을 비판하는 데 유식 불교의 비판이 가장 유력

           하였고, 이러한 비판은 기독교의 확산을 억제시키는 데 효과적인 작용을
           하였다.
             양수명이 베르그송 철학과 유식 불교의 관계를 살펴본 내용을 통해 우

           리는 유식 불교가 동서 문화의 융합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

           르그송의 생명의 우주와 유식학의 아라야식의 전변이 일치한다는 것이 양
           수명의 생각이다. 그러나 유식 불교가 보는 세계를 ‘생명의 흐름’으로 해석
           하는 것이 얼마만큼 타당할까? 세계를 의식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보는 측

           면은 인정할 수 있으나, 그 세계를 그대로 생명의 약동이 진행되는 진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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