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P. 143
을 갖게 된다. 지성은 생명에 대한 본연적인 몰이해를 특징으로 한다.”
베르그송에게 직관은 현실과 실재를 그 내부에서 직접 파악하는 인간
의 능력, 대상과 거리를 두지 않고 보는 것을 말한다. “직관이란 대상의 유
일하고, 따라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일치하기 위해 대상의 내부로 옮아가
는 공감sympathy이다.” 따라서 직관은 절대적인 것을 파악할 수 있고, 절
대적인 본체를 탐구하는 철학, 즉 형이상학의 본연의 임무를 맡기에 적합
한 방법이다. 직관은 대상과의 일치를 위해 대상의 내부로 일치해 들어가
는 표현할 수 없는 운동이고 의식적 공명이므로, 의식이 물질과의 접촉으
로 빠져들었던 습관을 거슬러가야 하는, 지성으로서는 힘든 작업이다.
중국 근대에 베르그송과 유식불교를 비교하는 경우, 직관의 방법론과 유
식의 방법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었다. 언어학자 여금희(黎錦熙,
1890-1978)는 태허가 강설하는 『유마힐경』을 연구하는 동시에 베르그송의 「창
조적 진화론」을 세밀하게 읽으며, 그 사이에 “완전히 부합되는 점이 많다.”고
보았다. 그는 「유마힐경기문발維摩詰經紀聞跋」을 써서 불교는 진실한 본체, 즉
‘진여’를 말하는 불가사의한 경지이고 이러한 경지를 체험하려면 아라야식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이것과 베르그송의 직관이 서로 부합된다고 주장하였
다. 베르그송은 ‘직관’의 방법으로 직접 우리 의식계의 ‘지속’, ‘창조적 진화’
를 체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수명(梁漱溟, 1893-1988, 사진 1·2·3)은 베르그송의 직관과 유식불
교의 방법론이 전혀 다르다고 보고, 그 근거로 이렇게 말하였다. “베르그송
의 방법은 이지를 배척하고 ‘직관’을 활용하는 것이고, 유식학은 직관을 배
척하고 이지를 활용하는 것이다. 현재 유식학의 눈으로 베르그송의 주장을
살펴보면,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식학이 지식을 말할 때는
두 가지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량(現量=감각)’과 ‘비량(比量=추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