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20년 10월호 Vol.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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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를 듣고, 코로는 아름다운 향기 맡으며, 혀로는 감로의 맛을 보
고 눈은 나쁜 것을 보지 않으니, 마음은 저절로 사악함이 가시고 맑아진
다. 성우 스님이 선열의 오롯한 시간을 잃지 않았던 것도 한 잔의 차가 있
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선적 사유는 다음의 시에서 한결 깊어진다.
봄비 산을 건너가고 춘란 꽃순 고개 숙일 쯤
토기 옹두리 어루만지다.
또 할 일 없어 먼 하늘 구름결 헤다.
내 생의 그 어느 경치 살살 어려 올 즈음
옥로차 한잔 바위도 눈 뜨겠다.
봄비가 그치고 산자락에 걸린 운무가 걷히면 산색 푸름이 한결 뚜렷하
고, 춘란 꽃순이 시들어 고개 숙인 한가로운 시간, 스님은 찻잎이 나올 무
렵 차나무에 그늘을 만들어 싹이 햇빛을 덜 받게 재배하여 만든 옥로차
한 잔을 들고 마음을 맑힌다. 옥로차 한 잔으로 바위도 눈뜬다고 했으니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드는 모습은 세속적인 얽힘과 인간적인 고뇌를 벗어
나 자성의 본질을 체득하는 법열과 여유를 보여 준다. 이처럼 성우 스님은
차를 마시며 담담하고 고요하게 자신을 우주와의 합일 속에 맡김으로써
나와 우주, 우주와 나 사이의 틈이 없는 원융세계를 획득하고 있다. 그야
말로 모든 것을 잊고 난 뒤의 기쁨, 즉 법열이다.
요컨대 선禪은 마음의 때를 씻는 도구이고, 차[茶]로써 때 자국을 씻을
것을 설하는 성우 스님은 “지금 여기의 나”라는 절대적 현재에 비추어 ‘참
된 자아’ 찾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스님의 선시에는 내려놓기와 걸림이 없
고 무심한 삶의 관조의 세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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