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3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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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재산을 모두 팔아 우리 문화유산을 사
            들여 지켰기에 오늘날 우리는 이를 향유하고
            있지만, 그 후손들은 근검절약하며 지금까지

            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 재산을 자식들

            에게 모두 물려주어 공부시키고 사업을 하게
            했다면 재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간
            송미술관이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

            의 수집에는 이런 소중한 정신이 배어 있다.

              아무튼 김돈희 선생과 김규진 선생이 활
            약을 하던 때에도 그 정신적 중심에는 항상
            항일정신으로 무장한 오세창 선생이 있었다

            (사진 4). 오세창 선생은 3·1독립선언의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며 항일 문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하였는데,  근대
            조선이 미몽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시

            대를 앞서 내다본 4인의 개화선각자, 박규수

            (朴珪壽, 1807-1877), 오경석(吳慶錫, 1831-1879),
            유홍기(劉鴻基, 1831-?), 이동인(李東仁, ?-1881)
            가운데 바로 그 오경석의 아들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서화와 금석학의

            맥은 이상적(李尙迪, 1804-1865), 오경석을 거
            쳐 오세창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대조루에는
            오세창 선생이 전서로 단아하게 쓴 주련이

            걸려 있다. 전등사에 걸린 오세창, 김돈희, 김               사진 4. 오세창 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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