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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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송료月松寮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
                                                      다리는  전등사  템플스

                                                      테이의  공간으로  사용
           사진 8. 월송료 현판.
                                                      하는 집이다. 기역자 모
           양의 집으로 예술법당 위에 지은 것인데, 그 높이로 인하여 난간마루에 앉
           아 보면 넓게 트인 산천이 눈에 들어온다. 월송은 ‘월송상조月松相照’에서 온

           말이다. 달은 부처님의 법을 형상화 하고 곧게 올라간 소나무는 다르마

           Dharma를 찾아 가는 수행자를 뜻한다. 고요한 밤에 진리를 깨달기 위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로 치열하게 수행하는 수행자 어깨 위로 부처
           님의 가피加被가 달빛처럼 교교히 내려앉는 열락의 순간을 의미한다. 돈

           오頓悟의 순간이 이러한 것인지는 그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

           다. 선불장의 주련으로 종경 선사의 게송을 선정한 장윤 대화상이 이름을
           짓고, 주련은 승석 화상이 김지장金地藏의 시를 쓰는 것으로 정했다. 둔필로
           월송료의 글씨를 썼다(사진 8). 석지장으로도 불리는 김교각(金喬覺, 696-794)

           스님은 신라 성덕왕(聖德王, 691-737)의 장자로 태어나 24세에 속세의 인연을

           끊고 바로 당나라로 건너가 구도생활을 하다가 마지막에 양쯔강揚子江 남쪽
           에 있는 구화산九華山에 화성사化城寺를 창건하고 개산조사開山祖師가 되어
           주석하면서 불법을 설하였다.

             당시 그는 지장 보살의 화신으로 명성이 널리 알려져 당나라뿐만 아니

           라 신라에서도 그의 불법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갔다. 794년 99세
           나이로 마지막 설법을 한 후 좌선한 채로 입적하였는데, 몸이 썩지 않은
           채 육신공양으로 등신불等身佛이 되어 지금까지 지장보전地藏寶殿에 그대로

           봉안되어 있다. 그리하여 구화산은 당나라 이래 지장 보살의 성지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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