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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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모여 들고 있다. 당나라 시대에는 이런 구법
            열기로 인하여 300개가 넘는 사찰이 구화산에 세워졌다. 소설가 김동리(金

            東里, 1913-1995) 선생은 젊은 시절 사천 다솔사多率寺에서 그의 맏형 범부凡
            父 김정설(金鼎卨, 1897-1966) 선생이 대중에게 강연할 때 이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소설 「등신불」을 쓰게 된다. 주련으로 걸린 김지장 보살의 ‘송동자
            하산送童子下山’ 시를 음미해본다.



                空門寂寞汝思家  절간이 적막하니 네가 집 생각이 나서,

                禮別雲房下九華. 승방에 작별 인사하고 구화산을 내려가네.
                愛向竹欄騎竹馬  대난간 죽마 삼아 타고 놀기 좋아하더니,
                懶於金地聚金沙.  붓다의 황금 땅에 와서는 금싸라기 줍기를

                               게을리 했구나.

                添甁澗底休招月   항아리에 물 담으며 시냇물에 잠긴 달은
                               건지지 않더니만,
                烹茗甌中罷弄花. 차 끓인 사발 속에 띄워볼 꽃이 없구나.

                好去不須頻下淚  그래 잘 가거라. 눈물 자꾸 훔치지 말고,

                老僧相伴有煙霞. 노승에겐 벗 삼을 산안개 노을이 있지 않으냐.


              진리를 깨우치는 길이 이렇게도 외롭고 고독하며, 정작 앞에 두고도 보

            지 못하는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인간이 헛고생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항아리 들고 물 채우러 시냇가에 갔으면서도 왜 물만 담고 시
            냇물 밑에 환하게 비치는 달을 건지지 못했는가 말이다. 월송료에서 밤을
            보내는 사람은 어쩌면 달빛이 고요히 깔리는 마당에 나와 달그림자 밟으며

            김지장 보살의 이 시를 한번쯤은 새겨볼 일이다. 그는 신라의 왕이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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