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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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자리도 과감히 던져 버렸지 않았는가 말이다. 진리를 위하여! 그런데
           참 부끄럽기도 한 일이지만, 천년도 지난 뒤에 태어난 어리석은 중생은 월
           송상조의 달밤을 찍어 보자고 하며 그저 구름 사이의 달과 소나무 숲이

           들어있는 전등사 밤 풍경 사진만 찍었다(사진 9).

             아침 일찍 일어나 정족산성의 동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가파른 길을 오
           른다. 산성위로 올라가면 강화도의 동서남북이 모두 보인다. 어느 방향으로
           나 일망무제로 탁 트인 시야와 깨끗하고 상쾌한 공기에 정신은 더욱 맑아

           온다. 그런데 전등사라는 이름이 고려 충렬왕의 왕비였던 정화 궁주(貞和宮

           主, ?-1319)가 가지고 있던 송나라 대장경과 옥등잔을 절에 전달하면서 ‘등
           잔이 전해진 절’이라고 하여 전등사가 되었다고 한다. 62년간의 최씨 무신
           집권 기간인 1231년부터 9차례 39년간 강화도로 천도까지 하며 싸웠지만

           1270년 결국 고려는 항복하고 강화도에서 송도로 나왔다. 패전국의 왕, 24

           대 원종의 통혼요청으로 39세인 자기 아들은 몽골 쿠빌라이의 16살짜리
           딸 쿠툴룩켈미시忽都魯揭里迷失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 아들이 충렬왕이
           고 이 몽골 여인이 제국대장 공주齊國大長公主라고 추봉된 사람이다. 이 어

           린 몽골 여인에게 뺨까지 맞는 수모를 당하고 자식까지 둔 자신의 아내가

           궁주로 강등당하고 별궁에서도 내쫓기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은 주
           인공이기는 하지만, 잘 나가던 고려가 무신들의 사유물로 전락되면서 국정
           농단의 말로는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돌이켜 보면, 1206년 몽골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한 징기스 칸 이래 몽

           골은 세대를 이어가며 천하통일을 위한 대외원정의 계획을 수립하고 그 강
           하던 서하국, 금, 호라즘, 러시아, 깁차크국, 남송 등을 정복하고 고려 정

           복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고려는 그간 1170년 이의방(李義方, ?-1174)
           과 정중부(鄭仲夫, 1106-1179)가 무력으로 나라를 뒤집어엎고 국정을 농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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