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20년 11월호 Vol.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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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경대승(慶大升, 1154-1183), 이의민(李義旼, ?-1196)으로 이어지는 무신세
력들 간의 권력투쟁으로 파행을 거듭하였다. 권력투쟁에서 최충헌이 이겨
최씨정권을 만들었다. 그가 죽자 내부반발 속에 최우(崔瑀=崔怡, ?-1249)가
권력을 세습하고, 최우와 기생 사이에 난 최항(崔沆, ?-1257), 최항이 송서
장군의 여종과 사통하여 낳은 최의(崔竩, ?-1258)로 이어가며 국정을 농단
하다가 내부 반란으로 최의가 제거되면서 그 동안 허수아비 왕이었던 강
종(康宗 王貞, 1211-1213), 고종(高宗 王瞋, 1213-1259)과 원종을 마지막으로 항
쟁을 끝내고 몽골 쿠빌라이에게 두 손을 들고 강화도에서 나왔다.
그때까지 아까운 장수와 인재들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잡혀가
고, 북쪽에서부터 나주, 경주, 진주 등에 이르기까지 전 국토가 약탈, 살
육, 방화로 유린되었다. 역사에서 언제나 이런 비극의 책임은 권력을 쥔 자
들에게 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후 고려는 1368년 원이 망할 때
까지 원나라에 복속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나라가 난장판이 되
고 백성들만 또 죽어나가게 되자 ‘이게 나라냐’ 하고 이제현(李齊賢, 1287-
1367), 이색(李穡, 1328-1396), 정몽주(鄭夢周, 1337-1392), 정도전(鄭道傳, 1342-
1398) 등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유학파들이 정상국가를 꿈꾸게 된다.
아무튼 나는 이런 등잔전래설은 일반이 듣기 쉽게 만든 속설이라고 본
다. 전등사는 불교가 처음 전해진 것을 계기로 지어졌기에 억울한 정화 궁
주의 옥등잔과 대장경을 전해 받은 것을 기화로 그 말이 같으면서 동시에
불법의 등불이 처음 전래되었다는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 전등사로 개명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전등사에 오면 말 그대로 진리의
등불을 하나씩 얻어 간다. 나도 이 등불을 하나 얻은 것인지도 모른다. 갑
자기 『전등록傳燈錄』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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